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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정책칼럼 | 문제행동 장애아 위한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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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운복지관
  • 18-09-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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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미국인의 상반된 장애아 시선 체감

‘인내와 배려’ 장애아 사회성에 큰 영향 미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8-31 13:25:55
올해 초에 한국에 꽤 오랜 시간 머물렀었다. 회사를 다니느라 그간 한국을 방문해도 이주 이상 체류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거의 5주 정도를 머물렀으니 몇 년 만에 가장 장기간 체류한 셈이다. 

발달 장애가 있는 필자의 딸은 지금 만 7세인데 아직 여러 가지 면에서 3~4세 아이와 같은 행동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의사소통도 딱 그 정도 나이 대에 머물고 인지 능력도 떨어지다 보니 의사소통 외에도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나 참을성도 아직 세, 네 살 아이와 같다. 

거기다가 감각에 예민하다 보니 여러 장소에서 갑자기 못 견뎌서 울거나 머리를 두들기는 자해 행동을 하거나 자리를 뜨고 싶어 갑자기 움직이는 등 돌발 행동을 할 때가 부지기수이다.

이런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머물면서 나는 미국에서는 거의 경험한 적 없는 당황스러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바로 비난의 눈총이었다. 아이의 외적 발달은 누가 봐도 평범한 초등학교 1학년의 외모인데 아직도 아기처럼 행동하는 딸아이는 전형적인 버릇없는 아이로 쉽게 낙인찍혀 버렸다. 

백화점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머리를 두들기며 울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다. 그 인파 속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이를 질질 잡아끌고 혼을 내며 가는 동안에도 수많은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그 누구도 안쓰럽거나 이해하는 눈빛이 아니다. 아 저기 버릇없는 아이 또 하나 있네, 비난의 눈빛이 쏟아진다. 소위 말하는 맘충이란 단어가 내게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우는 아이를 어떻게든 끌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실외로 나왔다. 

한파가 몰아닥친 도시 한복판 길바닥에서 상황을 이해할리 없는 아이에게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내고 큰 소리로 꾸짖으면 과연 내가 화가 난 대상이 아이인지 우리를 쳐다보던 수 많은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어지곤 하였다.

그렇게 힘겹게 5주를 보내면서 서서히 이 아이와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점점 집안에 만 머물겠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게나 차갑고 무섭구나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또 한 가지는 아이가 울거나 문제 행동을 할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갑게 쳐다보다 보니 어떻게든 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미국에선 절대 하지 않던 보상을 자꾸 하게 되었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급히 아이의 손에 들려주면서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울음을 터뜨린(문제 행동을 보인)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수단으로 이런 달콤한 보상을 주면 아이는 내가 울어서 엄마가 이렇게 좋은 것을 주는구나, 결국 문제 행동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내가 오로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문제 행동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질 때 즈음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장을 보러 아이와 대형마트를 갔다. 시차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마트에서 갑자기 이유 없는 분노 발작을 쏟아냈다. 

이미 한국에서 나쁜 버릇이 든 아이는 이렇게 분노발작을 하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 바로 등 뒤에서 옷을 고르던 여자분 두어 명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태연하게 옷을 고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이때다 싶어 아이를 끌고 구석으로 가서 아이 스스로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일명 타임아웃 혹은 진정의 시간(quiet time)으로 미국에서 훈육을 할 때 종종 쓰는 방법이다. 여전히 우리는 마트 안이었고 진정이 되기까지 아이의 울음은 더 크고 세졌다. 나는 옆에 가만히 서서 아이를 기다렸다.

큰 마트 안의 지나가는 사람도 직원도 그 누구도 우리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마치 아이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이 그들은 그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몇 분을 그렇게 악을 쓰고 울던 아이는 스스로 울음을 그쳤고 우리는 조용히 장보기를 마무리하였다. 

아이에게 전화기도 태블릿도 들려주지 않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아이는 이제 더이상 울어도 엄마가 땀 범벅이 되어 우왕좌왕 본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는 듯하였다. 

미국에서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이건 일반 아이이건 어린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울거나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가 눈총을 줄 만큼 그렇게 끔찍한 사고가 아니다. 

누군가를 쳐다보는 것이 예의가 아닌 이유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미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훨씬 더 관대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회에서 자란 미국 아이들의 공공질서 에티켓은 더 훌륭하다. 감히 추측해 보건데 비난의 시선을 받지 않는 덕에 엄마는 울거나 뛰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아이의 행동을 당장 멈추기 위해 결과적으로 행동을 악화시킬 보상이나 벌을 주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문제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과 타협안을 생각하고 훈육을 할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자리에 앉아있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당장 뭔가를 들려주거나 아이를 자리에서 내려주는 대신에 아이가 스스로 울음을 그치고 그 장소를 조금이라도 인내하게 하고 그 이후에 좋아하는 보상을 준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식당에서 우는 아이를 향해 일제히 인상을 쓰고 눈총을 주는 대신 혼자서 아이를 힘겹게 훈육하는 엄마를 모르는 척하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인내해줄 수 있는 주변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발달 장애를 가진 가족에게는 평생 적용되는 사례이다. 자폐 아이가 손을 펄럭이며 움직이거나 귀를 막고 울음을 터트려도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대신 인내해주고 배려해준다. 

더 나아가 아이가 자폐가 있음을 눈치챈 주변 사람들은 뭐 도움 필요한 것은 없냐고 오히려 묻곤 하였다. 덕분에 장애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그 장소에 적응할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아이의 행동을 수정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지적 장애나 발달 장애인들이 집안에 머무는 대신 어디든 눈치 안보고 다니는 것도 이런 사회성 훈련덕에 가능한 것이다. 어린아이를 향한 사회의 인내와 배려는 결국 일반 아이뿐만 아니라 장애 아이의 사회성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어린이 박물관에 다녀왔었다. 전시관을 이동하는데 한 아이가 복도에 누워서 악을 쓰고 울고 있었다. 아이 주변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 아이와 엄마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엄마는 당황한 기색 없이 아이 옆에서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조근 조근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타이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또래의 아이가 그 우는 아이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재빨리 그 쳐다보던 아이의 엄마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저 친구는 오늘 너무 힘든 일 있어서 우는 거라고 너도 가끔 그렇지 않냐고 아이에게 말하며 쳐다보던 아이의 팔을 끌고 발걸음을 재빨리 옮겼다.

바닥에 누워서 울던 아이가 스스로 울음을 그칠 것이고 울던 아이의 엄마는 다음번에 이런 상황에서 문제 행동이 일어나지 않게 아이와 타협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공공장소의 에티켓을 몸에 익혀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없다. 아이들은 울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생존 본능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고 길들이는 것은 부모만의 몫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한국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맘충이라는 혐오 단어에 묶어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쉽게 비난하고 지적하는 시선이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워줄 배려와 인내를 가진 사회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가 보고 자란 그 사회를 그대로 담으며 성장한다. 성숙한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자라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들이 받았던 배려를 약자에게 베풀게 된다. 

이 인내와 배려의 대물림이야 말로 어쩌면 평생 사회의 돌봄이 필요할지 모를 우리 장애 아이들의 미래에 가장 필요한 버팀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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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유니 (naluit8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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