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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 “엄마, 나 장애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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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운복지관
  • 19-02-07 09:26
  • 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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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가야~ 쇠고기 한 근 내거라”
“김 서방~ 쇠고기 한 근 주시게”

김 씨는 김가라 불릴 때는 정확하게 한 근을 주고, 김 서방이라고 불릴 때는 덤을 뚝 떼어 준다. 거들먹거리는 반말보다 존중하자는 이야기다. 

요즘은 어떨까? 제값대로 받으면 손해는 아니어도 못 받은 덤에 대해 목소리 크게 항의하여 덤은 물론 정중한 사과를 받아 내는 진상고객의 갑질을 종종 들을 수 있다. 

또는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져야 한다는 심보가 “누가 그러던데”, “분명 그랬을꺼야?”,“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의 삶 한켠은 왜 그럴까? 왜 저렇게 살까?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다가
“내가 쓰레기 인줄 몰랐어요?”라며 당당한 얼굴에 당황스러웠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맘을 추스려도 한동안은 속이 편치 않다.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이 타의에 의해 악역이 되었을 때 연민을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의 억울한 죽음 또는 누명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드라마 SKY 캐슬의 입시코디 김주영의 대사 패러디가 유행이다. 그런데 김주영을 연기한 배우 김 서형은 촬영 내내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그 역을 소화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연기가 찬사를 받고 있음에도 정작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김주영의 생각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힘겨웠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자신의 불행으로 남들도 불행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야 보상받는 것으로 여기는 김주영의 세계가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외롭기까지 했다는 배우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떡이 가득인데 남의 손에 있는 달랑 하나 그것조차 빼앗거나 떨어트려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심성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온갖 말들로 한 사람을 매장하고 참다 참다가 반격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소인배로 둔갑시켜 놓는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2011년부터 현재 전국 교육청과 교육기관 그리고 크고 작은 행사에서 지적장애 첼리스트 배 범준과 엄마인 나는 ‘장애인 인식(이해)개선’을 위한 강사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가는 곳 마다 따뜻한 시선과 응원에 장애인 당사자인 배범준은 물론 엄마인 내가 더 큰 힘을 얻고 희망을 갖는다.

엄마가 희망을 갖고 한 발 나갈 때 아들은 여러 걸음을 걷게 된다. 잊지 않고 초대해 주시거나 소개로 초청해주시는 분들의 응원 덕분이다. 

그렇게 희망을 향해 어렵게 한발씩 내딛을 때 응원은커녕 발목을 잡는 이들도 있다.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이들 중에는 장애인을 꺼려하거나 무서워하고 잘못된 정보로 오해와 편견을 갖는 이들을 만난다.

그런데 비단 비장애인들만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질까?

발달장애(자폐, 지적. 다운증후군)인들이 가는 모든 기관 등 그곳에 장애 유형에 따른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어떨까?
그의 가족들은 장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까?

“우리 아이는 못 느껴요”라고 말하는 어느 자폐인의 어머님,
“우리 아이는 고기능 자폐예요”라며 ‘고기능’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자폐인은 천재이고 지적장애인은 바보예요”란 주장과
“지적장애인이 자폐인에게 일을 시켜서 화나요”란 주장,
“자폐인가 느닷없이 지적장애인을 패는데 무서워요”란 목격담과
“똑똑한 자폐인인 지적장애인을 살살 약 올리죠”란 경험들에
얼마나 동의하고 공감할까?

서로 같은 생각과 경험이 있을 경우에는 맞장구를 치겠지만.
서로의 입장이 다르거나 공감되지 않으면 불통과 적개심마저 들 것이다.
그렇게 적대하게 되면 각자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저 극성맞은 (장애인) 부모가 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처럼 
장애인들 또한 각자의 환경과 성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한다면 악의적인 수다는 외면당할 것이다.

“엄마, 나 장애인이야?”라고 묻는 범준군의 눈은 절망이 가득했었다.

‘장애인’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범준군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장애인이어서 좌절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장애인’인 것을 확인하며 절망했었다.

지금은 “저는 장애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있다.
장애인, 중증장애인도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이해’ 차이는 ‘관심’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어떤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감소되고 이웃으로 가족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힘이 들거나 좌절할 때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그 말은 따뜻한 말 한마디일 것이다.
진심으로 전하는 응원의 말.

진심 어린 응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음을 담은 표현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다.
듣고 싶은 희망의 응원.
내가 먼저 건네자.
진실 된 관심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장애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동참하는 것임을 우린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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